2021년 여름입니다.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출시되고 있습니다. 한동안 말뿐이었던 테슬라가 모델 3와 모델 Y를 출시한 것도 벌써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연일 주식시장에서는 전기차 관련 주식들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배터리 업체와 전기차 양산업체들이 뉴스의 주인공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도 벌써 조금은 철 지난 뉴스에 불과합니다. 전기차는 친환경차로 인식되고 있고, 갈수록 이상기후가 심해지고, 폭염, 폭설, 미세먼지로 어려움을 겪게 될 때 마다 점차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ESG 자체가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Environment, Social (Responsibility), and Governance 중에서도 환경(E)에 대한 요구사항은 그 기준이 아주 높아지고 있습니다.
자동차 시장도 전기차와 수소전기차로 이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 때 (약 2013 년경) 클린디젤이 키워드였으나,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특히 2017-2019 시즌 한국에서 극심하게 겪었던 미세먼지 이슈가 불거지면서 지금 디젤 자동차에 대한 규제는 아주 엄격해졌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제 글타래 '디젤의 뒤안길'을 읽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가솔린 직분사 엔진마저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압펌프 직분사 방식이 배출가스량을 늘리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제 얘기로 돌아와서, 저는 여러가지 이유로 이제 조기에 새 차를 알아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새 차를 고르는 와중에, 저는 지금이 가솔린 고배기량 자동차를 타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 전기차 인프라가 불안하다.
전기차는 출시되고 있는데, 충전 인프라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합니다. 충전소의 수, 공동주택 내 충전시설 설치 문제, 일반 주유소의 충전소 전환 문제, 완충까지 걸리는 속도등 여러가지 문제가 아직 해결이 안 되었습니다. 현재 수준이라면 단독주택에 살면서 집에다가 충전소를 설치하는 것이 아닌 이상 실질적인 인프롸 확보가 어렵습니다.
앞으로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충전난은 심화될 것입니다. 화석연료에서 전기로의 자동차 연료 전환은 가솔린-디젤 수준의 전환이 아닙니다. 구동 방식 자체가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전기차 인프라가 완전히 갖춰질 때까지 안전사고도 여러 건 있을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충전이 어려운 것이 문제라기 보다는 충전 용량과 시설의 분배에 단기적으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충전하기 어렵고, 충전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그 문제가 조기에 해결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얘깁니다.
파노라마 썬루프가 태양광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것 정도가 그나마 가까운 대안인데, 이것마저 희망사항이라고 보는 것이 아직은 맞습니다.
2. 디젤은 비싸다.
과거에 가솔린과 디젤의 가격차이가 거의 800원 이상 차이가 났던 시절도 있습니다. 그러나 승용 디젤이 보급되고, 정부가 디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유류세를 조정했기 때문에 일반 무연휘발유와 경유의 가격 차이는 리터당 200원에 불과합니다. 예전같은 상황이라면, 주행거리가 아주 긴 업무용 차량이나 상용 차량은 분명히 경유 메리트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상황이 바뀐 셈입니다. 경유가 그렇게 싸지 않고 주행거리가 길어져도 연비면에서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저도 경유차를 싼 맛에 8년동안이나 탔지만 (그것도 02년식을), 이제 리터당 200원의 차이 때문에 경유차량의 진동과 높은 정비비용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행거리가 1년에 10만 킬로미터 정도 되야 의미있는 유류비 차이가 나겠지만, 그 긴 주행거리 동안 디젤의 진동을 견뎌야 한다?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리 최근의 디젤차량들이 NVH 면에서 좋아졌다고는 해도 (아무리 조용하다한들) 결국은 4기통 디젤입니다. 6기통 이상 고배기량 디젤이 그나마 좀 조용해질 뿐, 비슷한 가격대의 4기통 디젤 차량들이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 진동과 소음이 더 올라올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3. 하이브리드 차량의 존재와 한계
세 번째 이유는 디젤을 사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동시에 여전히 하이브리드에 대한 의구심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출시된 쏘렌토 MQ4 버전을 보면서 아 이제 SUV도 디젤 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습니다. 1.6L 가솔린 하이브리드 모델이 주는 연비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그러면서도 디젤의 진동 문제는 겪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래서 3천만원 후반대의 쏘렌토 하이브리드가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 중고차의 가격입니다. 중고차의 가격이 얼마나 떨어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은데, 하이브리드 특성상 연식이 길어졌을 때 어떤 정비 이슈가 있는지 아직은 의구심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배터리 교환이 된다, 프리우스가 아직도 멀쩡히 굴러다니는 걸 보면 괜찮은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동차에 대해서 저는 아주 보수적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되도록 주유하면 아무 문제 없는 수준의 차량을 끌고 다니는 것이 좋으니까요. (세상사 고민거리 많은데 자동차 가지고 골머리를 썪이고 싶지 않은 겁니다.)
아무튼 이 문제는 적어도 하이브리드 차량을 새 차로는 사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중고차 가격의 방어가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는 차량이 있다면 감가, 전기차가 더 좋은 모델이 나와도 감가, 중고차 가격이 방어가 될 이유보다 감가가 될 확률이 높아보입니다.
물론 차종에 따라서는 하이브리드 여부에 관계없이 중고차로 인기가 있고 가격 방어가 잘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는 순간 고민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고, 솔직히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뭔가 공부를 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좀 되네요.
4. 차량 다운사이징 추세
이제 제조사들은 차량의 배기량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애초에도 세금 문제 등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 때 쏘나타에도 3000 cc 이상의 엔진이 올라간 적이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배기량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K3 같은 차량을 보면 CVT 미션에 1000 cc 급이 올라가고 있고, 과거 EQ900, K9급 기함에 5000 cc가 들어갔던 것도 점점 없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국산차에 남아 있는 그나마 고배기량은 3800 cc 람다 엔진 정도라고 보면 될 거 같습니다. (팰리세이드에 이게 들어가 있죠.) 제네시스에도 요즘은 3.3T (3300 cc 터보 모델) 가 올라가죠.
앞으로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가솔린 고배기량 자동차는 국산차중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아마 미국차 정도 되어야 고배기량들이 남아 있겠네요. 그 얘기인 즉슨, 앞으로 합리적인 가격의 국산차로 가솔린 고배기량 모델을 경험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6기통이 겨우 몇몇 차종에 남을 것이고, 8기통 이상은 아예 사라지겠죠.
언젠가는 추억하며 말하게 될 것 같습니다. 승마를 해보는 것, 클래식카를 타보는 것 같은 경험이 중요한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는 미친 배기량 자동차를 탄 적도 있었지.'
'너 10기통 몰아본 적 있냐?'
'E바디 M3 몰아본 적 있냐?'
마치 이런 것처럼요. 저만 그런가요?
5. 내연기관이 무조건 환경에 안 좋다는 통념에 대한 의구심
이러한 최근의 흐름들은 기본적으로 내연기관의 반환경성에서 출발합니다. 내연기관을 덜 쓸수록 친환경적인 선택이라는 인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죠. 하지만 반드시 그러한지는 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수력 발전된 전기나 태양광 정도가 에너지원중 친환경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기를 생산하는데 어차피 화석 연료를 쓴다거나 전기 생산에 화석 연료 단순 사용보다 많은 에너지가 투입된다면 그건 친환경의 탈을 쓴 환경 파괴에 지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태양광발전 마저도 효율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고, 농지 면적을 과도하게 차지하는 등 단순한 에너지 측면의 고려 이외의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기자동차로의 이행이 진짜로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는 것인지 그 전환비용까지 고려해서 따져보아야 하지만, 인간 세상이 보통 그렇게 움직이지 않죠. 이슈가 한 번 제기되면 우르르 몰려가고 그게 유행이 되어 세상이 바뀌는 것이 인간 세상입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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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차량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최소 가솔린 3000 cc 6기통 이상, 되도록이면 국산 중고차로 말이죠. 아마 며칠 안에 선택을 해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저 쏘렌토가 아버지 같은 차라도 더 이상 고생시키고 싶지는 않네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철저하게 보수적인 관점에서 차를 고르는 과정에 이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가솔린 고배기량 차량이면 정비 이슈 없과 진동/소음 문제 없도록 할 수 있고, 운행 인프라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혹시 이런 이유들에 다른 생각 있으시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이건 제 주관적인 기준에 불과하고 영원히 가솔린 고배기량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차를 고르러 가야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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