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타는 쏘렌토 BL 모델은 오래된 차입니다. 무려 2022년이되면 20주년을 맞이하는 이제 곧 30만 킬로미터를 앞둔 차량입니다.
리모트 도어락이 있었지만, 이제 오래되서 가지고 있던 두 개 모두 고장났습니다. 사실 아마 배터리만 갈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저는 원래 받은 구식(?!) 열쇠를 가지고 차 시동을 겁니다. 원격으로 문을 열 수 없으니 직접 열쇠로 문을 열고 잠가야 합니다. 혼자면 사실 상관없는데, 아이들을 안고 있을 때에도 안은 채로 낑낑대며 문을 잠가야 하죠.
심지어 저는 자동차를 한 번도 구매한 적이 없습니다. 제 블로그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아마 제가 예전에 썼던 글까지는 보시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모르실텐데, 이 차는 제가 아버님께 상속받은 차량입니다. 덕분에 저는 차량에 큰 돈은 쓰지 않고 30대 후반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상속을 받았기 때문에 타는 것이기도 하지만 제가 오래된 차를 계속 타고, 앞으로 사는 차도 가급적이면 중고차를 사려고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동차는 자산이 아니고 부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적어봅니다. 자동차는 자산 (Asset)이 아니라 부채 (Liability)입니다.
자동차를 구청에서 등록해서 마치 집을 등기친 것처럼 재산으로 공표하는 시스템이 있지만 자동차는 절대로 자산이 아닙니다. 제가 어릴 때 (완전 쌍팔년도 얘깁니다.) 각 그랜저 V6 3000cc 차량은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보통 그렇게 누구네 집에서 무슨 차를 탄다는 이야기는 그 집에 대단한 재산이 있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금융 거래를 할 때 차량의 유무에 따라 자산 정도를 판단하던 기준도 있었습니다. (이게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동차 등록증은 부동산의 등기권리증과는 다릅니다.
개인의 경우에도 장기렌트나 리스가 흔해지고, 당연히 자동차를 할부로 사는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이다 보니 요즘에는 자동차가 부채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마 더 쉬워졌으리라고 봅니다. 자동차는 대표적인 부채입니다. 계속 돈을 낼 일만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세 내야하죠, 기름값들고, 자동차 정비비가 들어갑니다. (디젤차는 떄맞춰 환경개선부담금까지 뜯어갑니다.) 가장 큰 건 감가상각비입니다. 자동차는 신차 출시 이후 빠른 속도로 감가가 됩니다. 중고차의 가격이 올라가는 일은 어지간히 인기 있는 차종이 아니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확률은 아마 99.9% 정도, 그것도 매니악한 차량이나 특정 경쟁 차종이 없는 차량이 일시적으로 가격을 방어하는 수준이지, 신차의 가격보다 비싸지는 확률은 거의 0에 가깝습니다.
저도 자동차를 어지간히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저도 M2 컴피티션을 보면 가슴이 뜁니다. 굳이 아들내미가 파란색으로 사라고 색상까지 지정해주는 마당에 나름 압박이 심해졌습니다. 저도 포르셰를 타보고 싶고, 랜드로버나 에스컬레이드가 탐나는 사람입니다. 자동차를 한 번도 사보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지금 타고 있는 쏘렌토 구형 모델도 제 차라 제 눈엔 이뻐 보입니다. 아끼는 차량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세상을 살다보면 자동차보다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하는 중요한 일들이 있고, 그런 우선순위에 밀려 한 동안 자동차를 잊고 살다보면, 차가 이쁘고 말고는 마음에서 떠나버리는 날들도 분명히 옵니다. 그런 자동차에 덜컥 큰 돈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합리적이지 못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수 많은 자동차 리뷰 채널들과 보배드림이나 엔카 같은 사이트를 저도 들어가서 봅니다. 어떤 차량들이 출시되고 있고, 새로운 옵션이나 파워트레인의 변화에 놀랍니다. 그런 리뷰들을 보면 한 대에 1억씩 하는 차량들이 일상처럼 얘기가 됩니다. 저는 아직 경제적인 자유를 달성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1억이라는 큰 돈을 자동차라는 100% 감가 확률이 있는 상품에 소비하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이건 아마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상황일 것이라 생각하고, 특히 저보다 연배가 어리신 20대, 30대에게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난 겨울에 디젤 자동차의 DPF 장착에 이러쿵저러쿵 글을 썼던 것도 최대한 이 차량을 오래 끌고 다니면서 첫 차를 구입하는 시기를 더 늦추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차를 타는 것이 꼭 참기만 해야하는 고역인거냐? 그건 아닙니다. 제가 오래된 차를 타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차를 구매하지 않으면 신제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동차의 크고 작은 결함이나 사건 사고와 무관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국내외 차량들의 결함때문에 크고 작게 마음 고생, 몸고생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자동차는 일정 기간 이상 지나면 시장에서 검증된 제품들이 가격 방어를 하며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그런 차들은 내가 유지비를 지출하는 딱 그만큼의 성능을 거의 보장합니다.
제가 자주 보는 해외 자동차 유튜버인 EricTheCarGuy의 채널에서는 이런 차를 Reliable POS (Piece Of Shit) 이라고 부른 적이 있죠. 믿을 만한 똥차라는 뜻입니다. 그런 차는 있어보이는 차는 아니지만, 이동에 지장이 없고, 내가 아는 성능을 항상 발휘해주며, 새로 산 신차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마음 편히 끌고 다닐 수 있는 차가 됩니다.
무려 02년식인 이 차엔 A 엔진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무려 미쓰비시에서 처음 도입했던 엔진이 그 전신이라는 얘기를 할 정도로 오래된 엔진이고, 소렌토 뿐만 아니라 상용차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포터에도 탑재되었습니다. 사용량이 많은 엔진은 그만큼 부품을 구하기도 쉽고, 여차하면 재생 엔진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엄청난 정비용이성은 큰 장점입니다.
가끔 비웃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포터 시동 걸릴 때와 똑같은 엔진음이 난다면서 놀리듯이 웃곤 하죠. 물론 장난인 것을 알기에 저도 그냥 별 거부감 없이 웃어넘깁니다.
하지만 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 차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고, 이 차를 오래타면서 다른 자산에 투자를 하고 돈을 아끼며 조금 더 경제적인 자유로 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팩트입니다. 물론 언젠가 유지비가 더 이상 합리적인 선을 넘어가는 날은 반드시 오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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