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섕크 탈출을 보고 나면 항상 차를 몰고 길에 나서게 됩니다. 오랜만에 조용히 혼자 집에서 쉬려고 했고, 그러다가 영화를 봤고, 그리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차 안이 유일한 휴식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꿈꾸는 탈옥에 가장 가까운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드라이브를 나가는데 이유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나갈 수 있는 드라이브는 가장 좋은 주행입니다. 주행이나 운전이라는 '동사' 보다는 내가 나의 갈 방향을 결정하고 나아간다는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나의 일이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과, 그저 남의 일이기 때문에 힘들고 지치는 것, 두 가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멀쩡한 집 놔두고 왜 굳이 돈 쓰면서 나가느냐는 논리의 뒤에는 자유로운 행동이 가지는 가치가 과소평가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이 영화가 단순히 탈옥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속당하고,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은 생활고가 되고, 그것은 자동차의 녹처럼 암이 되어 몸과 마음을 좀 먹습니다. 생활고의 현장이 가정이든, 직장이든, 국가든 상관 없습니다. 나에게 소중한 것이라고 나에게 구속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고, 대개 나에게 소중한 것들이 나를 구속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어떠한 논리로 설득하든, 그것은 분명히 나를 구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한 번도 태평양을 보지 못했습니다. 비행기 쪽 창문을 통해서 본 태평양의 구석이 아니라, 마음이 뻥 뚫리는 태평양을 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글에서 썼던 것처럼 Navigator 카테고리에 글을 쓰고 싶습니다. 여행 제한이 풀리면 마치 세계 여행을 할 것처럼 벼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진짜 여행을 떠날 수 있기는 합니까?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진짜 길을 떠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늘 그랬듯이 다른 이유를 둘러대고 방구석에 주저앉게 될까요?
이 영화를 보고 드라이브나 산책을 나가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오늘도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길을 나설 예정입니다. 마침 하지가 지났습니다. 일년의 절반이 지나갔다는 뜻입니다. 지난 반 년을 자유롭게 살았는지 돌아볼 시간입니다. 나이들어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도 좋겠지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혼자 여행을 가는 것은 더 좋은 일입니다.
토요일 오후에 갑자기 무슨 무책임한 헛소리냐라고 말할 사람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어떠한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거나,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책임감을 발휘하려면 그 책임을 무겁게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집에서 커피를 마셔도 똑같은 커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커피 한 잔 하러 차를 몰고 멀리까지 나가는 이유는 지금 해야하는 일을 떠났다가, 잠시 돌아와서 그 일을 마치고 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디를 가도 넘치지 않을지언정, 모자라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자유로운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자유라는 단어가 주는 설레임이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철이 들수록 강해집니다. 자유는 그냥 교과서에 나오는 말에 불과했지만, 점점 자유만큼 가슴이 뛰는 단어가 없습니다. 이제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뭔가 내가 내키는대로 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지금까지보다 더 소중하게 시간을 쓰는 것만큼 귀중한게 있을까요? 드라이브는 상징입니다.
흔히 말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고 말이죠. 이제 '이 또한 지나가면' 남는 것이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또한 지나가면 안됩니다. 또다른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말이죠: "노년이여, 저무는 해에 분노하라." 저는 아직 노년까지는 아니지만, 오늘도 드라이브를 나가서 일몰을 지켜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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