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이야기가 뜬구름 잡는 공상과학이었던 시절이 끝나고, 이제는 당연히 곧 자율주행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메카인 독일에서는 이제 더 높은 단계의 자율주행 차량이 운행을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2105217203Y
내년부터 독일 도로서 완전자율주행차 달린다…세계 첫 허용
내년부터 독일 도로서 완전자율주행차 달린다…세계 첫 허용,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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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기사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정도로 흔한 기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행보조장치 옵션이 신차 리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크루즈 컨트롤 정도는 당연히 쓰는 기능이 되었습니다. 코너 LIDAR의 유무나, 주행보조용 전방 카메라 같은 세부적인 기술까지 꼼꼼하게 따집니다.
자율주행의 단계가 5단계로 구분됩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런 옵션들은 자율주행의 낮은 단계에 해당합니다.
지금 제가 몰고 다니는 쏘렌토에는 주행보조장치나 카메라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 흔한 하이패스도 안 달려 있습니다. 아직도 저는 매번 교통카드로 고속도로 톨비를 계산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타이어 공기압 센서, ECM 룸미러 같은 이제는 기본에 속하는 옵션도 없고, 오토홀드나 스탑앤고 같은 거 없어서 매번 밀리는 시내 주행할 때마다 오른발 끝에 힘주고 운전해야 합니다. 블루투스로 연결되는 네비게이션 시스템도 없어서 편리한 안드로이드 오토나 애플카앱 같은 거 알면서도 못씁니다. 뭐 그래도 좋습니다.
네비게이션....아마 시작은 거기부터였을 겁니다. 주행기술이 발전하고 거의 항공기 수준의 전자장비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
사실 휴대폰 거치대 하나만 있어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네비게이션은 해결됩니다.
저도 당연히 네비게이션 씁니다. 모르는 초행길을 굳이 네비없이 고생스럽게 갈 필요는 없죠. 그건 그냥 미련한 짓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네비를 가능한 한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초행길을 굳이 고생스럽게 이정표만 찾아가는 일도 꽤나 자주하는 편입니다. 게임처럼.
지리와 방향 감각을 무디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늘상 다니는 길들은 굳이 네비가 필요없기도 하지만, 일부러 같은 목적지에도 다른 길로 가보는 시도를 자주합니다. 모든 길을 알 필요는 없지만, 많은 길을 알고 스스로 길을 연결해서 생각하여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두뇌를 단련시키는 방법입니다.
운전자들은 점점 네비게이션에 익숙해졌죠. 네비게이션이 두뇌가 할 일을 대신하여 우리는 편리함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면서 목적지에 도달하면, 막상 내가 어떤 길로 여기까지 왔는지를 잊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동차의 수많은 센서들과 전자장비들, 자율주행 알고리즘에 우리는 익숙해지겠죠. 네비게이션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네비게이션을 따라 다니면서 겪었던 것처럼, 알고리즘의 우리의 두뇌를 대신하고 우리는 편리함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방향감각과 주행질감 지리적 연결을 체득하여 얻었던 공간지각력의 후퇴를 겪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이라는 단어를 잘 들여다보면, '자율'이라는 단어의 주어는 자동차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율적인 주체는 자동차이죠, 그래야 인간이 주행이라는 번거로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해방은 주행을 포기하는 것에서 옵니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주행' 이라는 행위의 기능이나 효용성이 아니라,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 내가 어디로 갈 지 결정한다' 라는 사실이 이동이 아닌 '주행 자체의 즐거움'을 만듭니다.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뭐가 좋고 안 좋고,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롭게 생기는 문화일 뿐이고 거기에 굳이 어떤 가치 판단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지금 새 차를 알아보고 있고, 새차에 이런 기능들이 있으면 당연히 편리하게 사용하겠지요.
다만 저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나의 행선지를 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행선지로 이동하는 것까지 나의 결정권의 범주 아래 두기로 한 것이죠. 영등포로터리처럼 복잡한 길에서 갑자기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바뀌었을 때 제 스스로의 방향감각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선지를 바꿀 수 있는 제가 더 좋습니다. 제 블로그의 이름이 '주유는 자유다' 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저는 제 스스로 드라이브를 나가는 행위를 멈추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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