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마지막 날.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용인과 광주 사이의 땅으로 혼자 드라이브에 나섰다. 새벽 공기가 과히 차지는 않았다. 산사는 아니지만 고즈넉한 분위기가 싫지 않았고, 한 해를 마무리하기에 적당하였다. 조용히 남쪽 하늘이 보이는 방향으로 주차를 했다.
햇살이 눈을 파고 들어 이마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본넷 후드 위를 흘러나가는 빛의 곡선이 아름답다.
눈을 들어 멀리 산과 하늘이 만나는 지점을 응시하면 소나무 끄트머리 뒤로 산 봉우리를 살짝 빗겨난 곳을 보게된다. 2013년의 첫 날 새해 다짐을 할 때는 내가 마지막 날 이곳에서 이렇게 혼자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다.
마지막 날의 해가 뜬다. 단 한 번도 일출의 팬이었던 적은 없다. 해가 바뀌면 사람들이 또 앞다투어 산으로 바다로 새해를 본답시고 떠나겠지. 나는 관심없는 일이다.
탈상과 함께 결혼을 하게 되면서 내 손 안의 권한도 책임도 커졌다. 책임은 집의 임대료와 차의 유지비만큼 무거워지고, 권한은 통장잔고마냥 쥐꼬리만하다. 지금의 마음이라면 뜨는 새해 보다 가는 해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올해 있었던 일들이 하나씩 귓가를 스쳐지나간다. 과연 나는 오늘의 일몰을 볼 수 있을까. 운전석 창 밖 한 켠을 바라보며 선 허리에 있는 로터리를 한 바퀴 조용히 돈다.
하늘의 모양새가 심상치 않아 일찍 산에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키를 꼽자마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역시 오늘 일몰을 보긴 틀린 모양인데, 내년의 마지막 일몰은 조금 다른 마음으로 보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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