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일을 고백할까 합니다.
그 날, 그냥 미국 국내선을 이용했어야 했습니다.
업무상 미국 동부 해안도시인 보스턴에서부터 코넬 대학교가 있는 이타카(뉴욕주) 까지 가야했습니다. 그냥 비행기를 탔어야 했습니다. 세 시간 남짓 걸리는 비행시간, 공항에서 이러쿵저러쿵 보안 검색이 귀찮아 그냥 차를 몰고 가기로 했습니다. 딱 비행 시간 + 대기 시간만큼 걸립니다. 몇년 전 12월 겨울이었고, 블랙프라이데이 이후의 떠들썩한 시기, 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은 이미 한참 추워진 때였죠.
도로로 움직이면 최소 6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래도 보안 검색 귀찮은 것보다 차라리 드라이브나 하자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 때 아마 직행 항공편을 못찾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대부분 뉴욕을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하고, 그러면 제가 싫어하는 JFK를 들러야 하죠.)
차량은 저렴한 렌트카가 늘 그렇듯이 닛산 젠트라였습니다.
오후 2시 미팅에 들어가려면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7시전에 출발해야 합니다. I-90를 따라갑니다. 내륙으로 들어가다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유도 하고 도넛도 먹으면서 쉬기도 했습니다. 매사추세츠주에서 뉴욕주로 들어서니 강변의 멋진 풍경들이 나오고 철길과 다리도 많이 지나가게 됩니다. 멋진 풍경도 1시간 정도지나니 지형이 굉장히 독특해집니다.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큰 파도를 넘는 것 같은 단조롭고 지루한 지형이 나오는데 끝이 없습니다. 심지어 구글 맵이 연결이 안 될 정도로 휴대전화 네트워크까지 안 터집니다. 겨울인데 눈 까지 오더군요.
Upstate 뉴욕 (뉴욕 주의 대도시가 아닌 시골들)이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정말 다 쓰러져가는 나무 교회 건물 같은 것도 아직 서 있고 사람이 굉장히 없더군요. 중간에 코넬 대학교 근처를 거치게 되는데, (이런 표현은 코넬 출신 분들이나 뉴욕주에 계신분들에게 좀 죄송합니다만) 코넬 대학교 학생들이 왜 자살률이 높은지 알겠더군요. 뉴잉글랜드 내륙지역이라 날씨가 추운 편이고 여름이 짧습니다. 10월부터 거의 겨울로 봐야한다더군요. 화창한 날씨도 많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이타카 시내에 도착해서 업무를 처리하고 로체스터에 있는 파트너와 연락을 취합니다. 업무는 일단락 되었습니다. 문제의 사건은 보스턴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발생했습니다.
미국에서 차를 렌트하면 당연한 얘기지만 속도계가 전부 마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야구보시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투수의 구속 100마일이 시속 160km라는 점, 시속 60마일이면 시속 100km 입니다. 물론 저도 의식하면서 운전을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밀리는 구간도 없는 고속도로에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운전을 하다보면 70마일 정도까지 규정 속도를 넘겨서 운전하는 일이 생깁니다. 게다가 이 날이 미국 시골에서 운전하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고속도로가 다 같은 줄 알았습니다. 보스턴 같은 대도시에서는 60마일 규정속도라고 I-93 같은 우리나라로 치면 용인서울고속도로쯤 되는 대도시 근방에서 규정속도로 운전을 하는 운전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방의 고속도로는 그렇지 않았던거죠.
어, 왜 차들이 다 갑자기 천천히 가지....하다가 아차 하는 순간 위장막을 닮은 장갑이 둘러쳐진 경찰차가 제 차 뒤로 따라 붙더군요. 이 때 속도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시속 85마일. 제가 한국에서 면허를 따고 첫 운전을 워싱턴 DC에서 하는 간 큰 남자지만, 이 때는 간이 쫄깃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제가 경찰에 직접 적발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정말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상황이 펼쳐져 있는 거죠. 사이렌을 울리면서 꼬리로 완전히 접근하는 것이 갓길로 차를 대라는 신호인 것 같습니다.
자, 상황을 정리해보면,
저는 한국인 신분이고, 규정속도위반으로 미국에서 운전하면서 처음 적발되었고, 미국인 경찰이 차를 뒤에 대고 내려 제 차 쪽으로 걸어오고 있습니다. 제 렌트카 계약서와 국제면허증 및 면허증 원본은 글러브 박스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를 고용한 회사와의 계약서에는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없음을 조건으로 고용계약서에 서명한 것이 갑자기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저 미국인 경찰은 오른쪽 허리춤에 권총이 있는 것이 사이드 미러로 보이고, 왼 손은 모자를 고쳐쓰면서 오른손은 허리춤의 권총 근처에 둔 상태로 제 렌트카를 향해 걸어오고 있습니다. 순간 뒤의 경찰차 앞 유리를 통해 카메라가 있는지까지 반사적으로 확인합니다.
그래도 미국드라마 보고 배운 건 있어서, 절대로 반사적인 행동으로 여권이나 면허증을 찾거나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손을 운전대 위에 올려 놓습니다.
"Hi, officer, was I going too fast?"
(안녕하세요, 제가 너무 밟았나요?)
"License and Registration, Do you have any idea of speed limit around here?"
(면허증과 서류보여주세요. 규정 속도는 알고 운전하는 거요?)
그제서야 매우,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여 글러브 박스쪽으로 옮깁니다. 입으로도 우물쭈물 몇 마디 했습니다. '면허증이 글러브 박스 안에 있다....(어쩌고)'
"Is this a rental?"
(당신 이거 렌트카요?)
"Yes, sir." (네. 살려만주십쇼.)
렌트카 계약서와 면허증, 여권까지 몽땅 싸그리 보여줍니다.
알고보니 제가 65마일 구간에서 걸렸더군요. 오버스피드가 꽤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지금 사건 처리를 바로 하겠다. 카메라에 찍힌 사진까지 있으니 유죄를 인정하면 서명하면 되고, 나중에 벌금 계산하면 될거다. 유죄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지정된 판사를 확인하고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유죄를 인정합니까?'
제가 이걸 한 번에 이해를 못했습니다. 나 한국인인데 어떻게 재판에 출석하라는 겁니까? 라고 물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재판받으러 판사한테 가기 싫으면 걍 유죄 인정하고 서명해라. 이메일주소, 신용카드 번호랑 Billing Address 또박또박 적으시면 되고'
알고보니 나중에 온라인 카드결제가 되더군요. 그런데 그 때는 카드결제가 문제가 아닙니다. 아차 실수하면 저 경찰관이 총을 꺼내는 수가 있다라는 생각에 목숨걸고 영어를 구사했습니다. 곧 경찰관은 필요한 서류를 다 주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멍한 상태로 운전해서 던킨도너츠가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왔습니다. 커피가 한 잔 들어가고 나서 그제서야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생각하게 되더군요.
경찰관과 권총이 제 주변에서 사라지고 나서 가장 걱정되었던 건 외국인으로서 미국내에서의 제 지위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미국으로 출장이 주기적으로 있었던 시기라, 미국에 정상적으로 입국할 수 있는 자격을 유지하는 것은 생업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만약에 이 건을 잘 처리하지 못하고 과태료가 체납될 경우, 제 이름으로 영장이 발부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다음에 미국에 입국하는 순간 공항에서 체포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벌벌 떨면서 얌전히 운전해서 겨우겨우 호텔까지 다시 들어왔습니다.
나중에 이메일로 날아온 서류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제대로 내야죠. 이메일 받자마자 냈습니다. 국내보다 벌금이 셉니다. 부끄러운 일이고, 다 제 잘못입니다.
맨 아래 웹사이트 주소가 보입니다.
카드 긁는 것을 끝내고 영수증이 도착하자 안심이 됩니다. 한 번 더, 다 제 잘못입니다.
여행을 못 가도 그래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Navigator 카테고리에 글이 써지는군요.
Navigator 카테고리는 제가 해외에서 차를 몰았던 경험을 따로 기록해두기 위해 구분해놓았습니다. 아무래도 언어가 상대적으로 편하고 업무차 많이 방문하다 보니 미국 위주로 글을 쓰게 됩니다.
제목 그대로 미국에서 운전하다가 경찰한데 걸렸을 때 총 맞지 않고 처리를 할 수 있었던 경험을 적어봤습니다.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절대로 과속하지 마세요. 그리고 처음 겪는 상황이라고 허둥대면 좋지 않습니다.
안전운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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