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의 뒤안길

5등급 차량의 길: 노후 경유차량 운행제한에 관하여 part 1

불곰맨발 2019. 11. 1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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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을 제대로 못한지 5년 정도 가까이 되었습니다. 소수지만 제 글을 읽고 정보를 얻어 가신 분들, 심지어 댓글까지 남겨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전 글들에서 15만 킬로미터 정도였던 제 차량은 이미 25만 킬로미터를 넘게 주행하였습니다. 집안일부터 출퇴근과 여러가지 어려운 길을 함께 걸었고, 상속받은 이 차량을 제가 순수하게 운전한 주행거리만 15만 킬로미터에 달합니다. 일반적으로 중고로 차를 팔아도 이상하지 않은 주행거리입니다. 

 

최근에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정부에서 5등급 경유차량을 규제하기 시작한 것이죠. 작년 이맘때쯤부터 수도권 곳곳에 노후 경유차량 카메라가 도로에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경고문이 날아오더군요. 미세먼지가 심한 날 정부의 측정치에 따라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할 경우 운행정지를 명령할 수도 있다는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좀 더 최근, 7월쯤에는 서울시에서도 더 강력한 경고문이 날아왔습니다. 중구와 종로구에 해당하는 구역, 사대문 안 쪽에서 상시 운행제한 조치가 떨어졌습니다. 

 

이 02년식 쏘렌토는 제게 하용된 아주 작은 자유를 상징하는 차량입니다. 이제 환경 요인으로 일부 발이 묶이게 되었습니다.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서울과 수도권을 오가며 출퇴근을 해야하는 저로서는 미세먼지가 슬슬 증가하기 시작하는 요즘 같은 늦가을이 되기 시작하니 긴장이 됩니다. 지치면 차에서 새우잠을 자며 쉬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해지면 잠깐 드라이브도 하는 이 공간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은 어려워졌습니다. 타인의 의지에 의해 주차장에 세워둘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 것이 못내 못마땅합니다.

 

환경을 배려하는 공공의 목적으로  이런 규제가 시작된 것을 이해합니다. 그 점을 무엇보다 잘 이해하고, 적어도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성실히 환경개선부담금을 납부하고, 자동차 종합검사에 무리가 없도록 차량을 정비해왔습니다. 타이어와 타이밍 체인, 각종 오일류를 잘 정비, 관리하여 연료의 비효율적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나름 큰 돈을 투자하여 왔습니다. (이전 글들을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제 차량은 종합검사 배기가스 검사에서 항상 0~7% 배출을 기록해왔습니다. 하지만 명백히 엔진이 설계된 방식과 저감장치가 없은 한계 때문에 태생적으로 이 자동차는 5등급 차량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나 오해하실 수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배출가스 검사 결과와 관계없이 저감장치 유무와 연식 엔진에 적용된 Euro-X 기준에 따라서 등급이 부여됩니다.  참고로 제 차는 Euro-3 타입입니다.)

 

언젠가 이 차량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15만 킬로미터에서 25만 킬로미터까지 타면서 차량에 대한 애착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상속받은 이 차량은 제게 아버지의 분신과도 같은 차였고, 그래서 더 그렇게 공을 들여 관리해왔습니다. 처음에는 100만 킬로미터를 채울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감정과 고집만으로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폐차를 할 지, 아니면 지원금을 받아 DPF를 장착해야할 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정부의 저감 노력이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뭐가를 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만, 이 조치의 효용성에 대한  실험을 해볼 수는 있는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약간이라도 효과가 있는지 알려면, 무엇을 기준으로 미세먼지 증가분에 얼마만큼 영향을 주는 지 결정할 수 있는 정량적인 평가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기 중 가스 센싱에 대한 기준과 실험 결과 정도는, 그런 실험을 할 정부의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라도 꼭 확보되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주기적 전환 비용 문제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순히 조기 폐차 비용이나 저감장치 부착 비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은 차주가 조기 폐차 후 다른 방식으로 차량을 운용하거나, 저감장치를 장착하게 될 것이고, 일부 구형 휘발유 차량도 단속하기 때문에 (지금은 디젤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조만간 GDI 방식 휘발유 차량까지 폭이 확대되면서 결국은 전기나 수소차가 아닌 방식은 도로를 떠나는 방식으로 규제가 확대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자동차라는 상품의 수명은 규제에 의존하여 수명을 가지게 됩니다. 자동차의 기계적인 강성과 동역학적인 한계에서 오는 수명이 아니라, 규제에 의하여 일정 기준 이하의 차량들이 어쩔 수 없이 차주의 손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 전환 과정에서 대여이거나 소유이거나 더 많은 차량을 소비하게 될 겁니다. 렌트카 업체나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에서도 주기적으로 차량을 교환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완성차 업계이겠죠. 더 많은 차량을 합법적으로 outdate 시키면서 새로운 차량을 생산하여 판매할 수 있을테니까요. 이동통신에서 2G 서비스가 종료되는 것처럼 개인이든 법인이든 차량 소유자의 신차 구입 빈도는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믿을만한 똥차'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겠죠. 50만원 정도 과태료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한강 공원에 뿌연 미세먼지때문에 답답합니다. 

 

다음에는 DPF 장착에 대해서 좀 더 써보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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