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캐스퍼를 만든 광주형 일자리, 그리고 보스턴 다이내믹스
얼마 전 캐스퍼 출고 이후 글을 썼습니다. 많은 분들이 캐스퍼 출고일인 2021년 9월 29일에 이 글을 찾아주셨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국내 언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캐스퍼를 직접 인도 받은 소식을 다루었습니다.
기사 페이지에 올라간 대통령의 캐스퍼 사진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캐스퍼는 파워트레인이 1.0 자연흡기와 1.0 터보로 크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사진에서 확인한 대통령의 캐스퍼는 자연흡기 모델이었습니다. 다른 자동차 커뮤니티에서도 NA (Natural Aspiration, 자연흡기) 모델에 깡통 옵션인 것 같다는 의견들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동차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캐스퍼의 컬러와 옵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다른 소스를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자동차의 디테일때문에 사진을 유심히 본 것은 아닙니다.
캐스퍼는 사실 현대차의 엠블럼을 달고 출고되지 않습니다. 생산주체는 광주글로벌모터스입니다. 광주형 일자리라는 지역과 밀착된 조건으로 현대차는 인건비를 절감하고 디자인과 기본설계를 가지고 광주에서 위탁생산하는 방식이죠. 이는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대통령의 주요 일자리 정책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사진을 물끄러미 보았던 것은 광주형 일자리의 미래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 글을 진행시키기 전에 저는 경제나 정치 전문가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현대차가 캐스퍼를 이런 방식으로 출시하고 판매하는 목적은 정부정책에 따르는 액션을 취하면서 동시에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차 정규직 생산직의 인건비는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생산직원 실수령액도 높은 편인데 기업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지출하게 되는 금액은 더 높을 것입니다. 광주형 일자리를 활용하여 위탁생산하고 온라인으로 판매함으로써 현대차 입장에서는 생산직과 영업직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영업을 하지 않는 것도 엄청난 인건비 절감입니다.
캐스퍼의 출시는 그래서 현대차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훌륭한 실험입니다. 마진율을 개선하기 위해서 일종의 실험을 해보는 것이죠. 떨어지는 화폐의 가치와 소비자의 더 싼 자동차 가격에 대한 요구가 엄청난 시장상황에서 인건비 지출을 원래대로 두고 동일한 마진율을 유지하려고 하면 절대로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아반떼의 5년전 가격이 약 2천만원 내외, 2021년 현재 2천만원으로는 아반떼 신차를 깡통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2천만원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전기차로 옮겨가게 되면 부품이 줄어드니까 생산원가가 떨어질까요? 짐작컨대 그닥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저는 추측합니다. (올라갔으면 올라갔지....)
대통령의 입장은 이해가 갑니다. 자신이 추진한 주요 일자리 정책의 성과물로 캐스퍼를 인도 받았으니 뿌듯한 일입니다. 그런데 광주형 일자리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어떤 정책이 옳다 혹은 그르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비용절감의 압박이 있을 때 경제주체들은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쯤에서 상기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관계사로 현대 위아와 보스턴 다이내믹스라는 로봇 전문 기업을 두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소비자로서 현재 현대차의 주주로서 기업 분석을 했기 때문에 제가 알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현대차는 이미 생산공정에서 상당한 비율로 로봇을 쓰고 있을 겁니다. 현대 위아가 생산하는 로봇암만을 현대기아차 공장에서 쓰는 것은 아니겠지만, 공작기계 로봇을 다루는 기업을 현대차가 괜히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산직에게는 인건비를 지급해야 하지만, 생산로봇은 회계상 감가상각의 대상입니다. 현대차 노조가 걱정하는대로 현재차 생산라인에 투입되는 직원의 숫자는 향후 감소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생산로봇 뿐만이 아닙니다. 현대차가 최근에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개 로봇'으로 유명한 MIT 출신 기업입니다.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출정중에 보스턴/캐임브리지 지역을 갔다가 MIT에 들렀을 때 캠퍼스 통로에서 능숙하게 뛰어다니던 4족보행 로봇 '스팟'의 프로토타입으로 짐작되는 모델을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현대차는 이미 6월 BTS까지 섭외해서 '스팟'의 영상까지 공개했고, 캐스퍼가 출고되기 전 9월 10일자로 이 '스팟'이 현대차 공장 보안에 투입된다는 기사가 먼저 떴습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은 '큰 작업'을 하는 생산 로봇들이 못하는 미세한 작업이나 창고 내부 운반 같은 사내 물류작업에 투입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연구개발을 거듭할수록 이 로봇들의 완성도는 높아질 것입니다.
물론 사람의 직업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현대차가 로봇 기술을 극한으로 밀어부쳤을 때를 상상해보면 현대차 생산에 고용되는 현대차 직원은 생산직 경험이 있으면서도 로봇 제어를 관리하는 능력이 있는 일종의 '매니저'들이 아닐까요. 이는 지금 현장에서 근무하는 현대차 생산직 직원들의 직무와는 비슷해보일 수는 있어도 상당히 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대차는 오히려 연구 개발 지출을 늘리고 최대한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향으로 기업을 운영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캐스퍼 출시에서 얻은 데이터들은 그대로 앞으로 현대차, 기아차, 제네시스의 생산에 적용될 것입니다. (당연히)
생산직에 계시는 분들이나 이 방면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께는 조금 기분 나쁜 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직시해야 합니다. 기술의 발전이라는 이 크고 도도한 흐름을 인간이 거스르기는 어렵습니다. 광주형 일자리 정책은 상생의 아이콘일 수 있지만, 그 흐름은 분명히 기술 발전에 의한 임팩트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판단한 것이고 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지켜보면서 알게 되겠죠. 이 글 읽으시는 분들께서 미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